1장. 유리판이 내 손가락을 아는 법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그리고 빛의 삼원색”
이번 장에서 알게 될 것
- 장갑을 끼면 왜 터치가 안 되는지
- OLED 폰과 LCD 폰의 “검은 화면“이 다른 이유
- 화면을 확대하면 보이는 빨강, 초록, 파랑 점의 정체
- 120Hz 주사율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치킨 주문 여정: 시작
소파에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댑니다. 잠금이 풀리고, 배달앱 아이콘을 누릅니다. 이 당연한 동작 —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장갑 끼면 왜 터치가 안 될까?
겨울에 장갑을 끼고 스마트폰을 쓰려다 포기한 경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얇은 비닐장갑은 되는데, 두꺼운 가죽장갑은 안 됩니다. 소시지로 터치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실제로 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스마트폰 화면이 힘이 아니라 전기를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의 원리
스마트폰 화면의 유리 아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극 격자가 깔려 있습니다. 이 전극에는 미세한 전기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 사람의 몸은 전기를 담을 수 있는 도체입니다. 우리 몸의 약 60%는 물이고, 그 물에는 이온이 녹아 있습니다.
손가락이 화면에 닿으면, 그 지점의 전기장이 미세하게 변합니다. 전극의 전하 일부가 도체인 손가락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겁니다. 이 변화를 정전용량(Capacitance) 의 변화라고 합니다. 화면 아래의 컨트롤러가 이 변화를 감지해서 “아, 여기를 터치했구나“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장갑의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 맨손: 도체인 피부가 직접 닿으니 정전용량이 변합니다. 당연히 됩니다.
- 얇은 비닐장갑: 너무 얇아서 전기장이 관통합니다. 됩니다.
- 두꺼운 가죽장갑: 절연체가 두꺼워 전기장이 차단됩니다. 안 됩니다.
- 소시지: 수분과 이온이 풍부한 도체입니다. 됩니다.
- 터치 장갑: 손가락 끝에 전도성 실을 짜 넣어 전기가 통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방식을 정전식(Capacitive) 터치라고 합니다. 예전 ATM이나 키오스크에 쓰이던 감압식(Resistive) 터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감압식은 말 그대로 “누르는 힘“을 감지합니다. 그래서 손톱이든, 볼펜이든, 뭘로 눌러도 동작했습니다. 대신 반응이 둔하고, 멀티터치가 안 됐습니다. 닌텐도 DS의 터치스크린이 감압식이었습니다 — 작은 플라스틱 펜(스타일러스)으로 꾹꾹 눌러서 쓰는 방식이었죠.
스마트폰이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하고 줄이는 동작 — 핀치 투 줌(Pinch to Zoom) — 을 할 수 있는 건, 정전식이 여러 지점의 정전용량 변화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은 어떻게 빛을 만드는가
손가락이 닿았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의 화면은 어떻게 글자와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걸까요?
OLED vs LCD: “검은 화면“의 차이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완전히 검은색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폰 기종에 따라 두 가지 중 하나가 보일 겁니다.
- 진짜 검은 화면 — 화면과 베젤1의 경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꺼진 것처럼 보입니다.
- 회색빛 도는 검은 화면 — 어두운 방에서 보면 화면 전체가 은은하게 빛납니다.
1번이 OLED, 2번이 LCD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빛을 만드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LCD(Liquid Crystal Display) 는 화면 뒤에 커다란 백라이트가 있습니다. 이 백라이트는 항상 켜져 있고, 액정이 빛을 통과시키거나 막아서 이미지를 만듭니다. 문제는 “막는다“고 해도 빛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은색을 표현해도 빛이 살짝 새어 나옵니다.
OLED(Organic Light-Emitting Diode) 는 완전히 다른 접근입니다. 백라이트가 없습니다. 화소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냅니다. 검은색을 표현할 때는? 해당 화소를 그냥 끕니다. 빛이 없으니 진짜 검은색입니다.
[그림 1-2] LCD와 OLED의 구조 비교
LCD 구조 OLED 구조
┌──────────────────┐ ┌──────────────────┐
│ ██ ░░ ██ ░░ │ ← 색 필터 │ ██ ░░ ██ ░░ │ ← 색 필터
├──────────────────┤ ├──────────────────┤
│ ═══════════════ │ ← 액정층 │ 💡 ⬛ 💡 ⬛ │ ← 자체 발광
├──────────────────┤ │ (켜짐)(꺼짐) │
│ 💡💡💡💡💡💡💡💡 │ ← 백라이트 │ (백라이트 없음) │
│ (항상 켜져 있음) │ └──────────────────┘
└──────────────────┘
↑ 검은 화면에서도 ↑ 검은 화면 =
빛이 새어 나옴 완전히 꺼짐
OLED에는 LCD가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휘어집니다. LCD는 단단한 백라이트와 유리 기판이 필요하지만, OLED는 유기물 필름 위에 발광층을 쌓는 구조여서 구부릴 수 있습니다. 폴더블 폰이 반으로 접힐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화면 가장자리가 옆면까지 휘어져 내려오는 “엣지 디스플레이“도 같은 원리입니다.
시계나 알림을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도 보여주는 AOD(Always-On Display) 기능도 OLED이기에 가능합니다. 필요한 화소 몇 개만 켜고 나머지는 완전히 꺼두면 되니까요. LCD는 화소 하나만 켜려 해도 백라이트 전체를 켜야 해서, 이 기능을 쓰면 배터리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같은 원리로 다크 모드가 OLED 폰에서 배터리를 절약합니다. 화면의 넓은 영역이 검은색 — 즉, 꺼진 화소 — 이니까요. 반면 LCD에서는 다크 모드를 켜도 백라이트가 여전히 켜져 있으므로 배터리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다크 모드가 배터리를 아낀다“는 말은 OLED 폰에서만 사실인 셈입니다.
물론 OLED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유기물이 시간이 지나면 열화되는데, 색상별로 수명이 다릅니다. 파란색 화소가 가장 빨리 닳습니다. 같은 이미지를 오래 표시하면 그 부분만 눌러 앉는 번인(Burn-in) 현상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면 상단의 상태 바나, 항상 같은 위치에 있는 내비게이션 버튼 자국이 남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빨강, 초록, 파랑 — 세 개의 점
OLED든 LCD든, 화면을 아주 가까이 — 돋보기가 있다면 더 좋습니다 — 들여다보면 놀라운 것이 보입니다. 모든 색이 딱 세 가지 빛의 조합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이 세 가지를 RGB 서브픽셀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점(픽셀)은 이 세 가지 서브픽셀로 구성됩니다.
[그림 1-3] RGB 서브픽셀과 색의 조합
하나의 픽셀 (확대)
┌───┬───┬───┐
│ R │ G │ B │
│ │ │ │
└───┴───┴───┘
빨강만 켬 → 빨간색
초록만 켬 → 초록색
파랑만 켬 → 파란색
빨강 + 초록 → 노란색
빨강 + 파랑 → 보라색
초록 + 파랑 → 하늘색
전부 켬 → 흰색
전부 끔 → 검은색
빛의 삼원색입니다. 물감의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과 다릅니다. 물감은 섞을수록 어두워지지만(감산 혼합), 빛은 섞을수록 밝아집니다(가산 혼합). TV, 모니터, 스마트폰 — 빛을 내는 모든 화면은 이 원리로 동작합니다.
해상도와 PPI
그렇다면 이 픽셀이 얼마나 촘촘하게 들어차 있는가 — 이것이 해상도입니다.
“Full HD“라고 하면 가로 1,920개, 세로 1,080개의 픽셀이 있다는 뜻입니다. 총 약 207만 개. 요즘 스마트폰은 이보다 더 많은 픽셀을 6인치 남짓한 화면에 우겨넣습니다.
같은 픽셀 수라도 화면 크기가 다르면 선명도가 달라집니다. 이걸 측정하는 단위가 PPI(Pixels Per Inch) — 1인치에 들어가는 픽셀 수입니다. 65인치 TV와 6인치 스마트폰이 같은 해상도라면, 스마트폰의 PPI가 10배 이상 높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화면을 코앞에 갖다 대도 픽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해상도를 360p로 낮추면 뿌옇게 보이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고밀도 화면에 적은 수의 픽셀을 억지로 늘려 채우니, 점 하나하나가 눈에 보일 만큼 커지면서 경계가 뭉개지는 겁니다. 반대로, 같은 영상을 작은 화면에서 보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1초에 120번 다시 그린다
화면에 보이는 이미지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다시 그려지고 있습니다.
주사율(Refresh Rate) 이 60Hz라는 것은, 화면이 1초에 60번 새로 그려진다는 뜻입니다. 120Hz면 120번. 우리 눈이 이걸 인식하지 못할 만큼 빠르기 때문에 정지 화면처럼 보이는 것뿐입니다.
영화가 24프레임인 것은 유명합니다. 1초에 24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마트폰은 이것의 5배 속도로 화면을 갱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60Hz와 120Hz의 차이를 실제로 느낄 수 있을까요? 웹 서핑이나 영상 시청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할 때 — 배달앱에서 치킨집 목록을 훑어 내릴 때 — 차이가 드러납니다. 60Hz에서는 글자가 미세하게 끊기지만, 120Hz에서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따라옵니다. 게임에서는 그 차이가 더 극적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스마트폰 스펙에 “터치 샘플링 레이트 240Hz“라고 적혀 있는 걸 본 적 있을 겁니다. 이건 주사율과 다른 개념입니다. 주사율은 화면이 그림을 다시 그리는 속도이고, 터치 샘플링 레이트는 화면이 손가락의 위치를 확인하는 속도입니다. 화면은 1초에 120번 그리지만, 터치 위치는 240번 감지합니다. 그래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도 지연 없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사율 vs 터치 샘플링 레이트
시간 → ──────────────────────────────────
화면 ■ ■ ■ ■ 120Hz: 1초에 120번 그림
터치 · · · · · · · · 240Hz: 1초에 240번 감지
최근에는 가변 주사율 기술도 쓰입니다. 화면에 변화가 없을 때는 주사율을 10Hz, 심지어 1Hz까지 낮추고, 스크롤하는 순간 120Hz로 올립니다. 시계만 띄워놓은 화면을 1초에 120번 다시 그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 기술 덕분에 120Hz 폰도 배터리를 크게 잡아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건: 갤럭시 노트7, “작게 만들기“의 대가
2016년 8월, 삼성 갤럭시 노트7이 출시됩니다.
출시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배터리 폭발 사고가 보고되기 시작합니다. 충전 중에 타는 것은 물론, 주머니에서, 비행기 안에서, 심지어 어린이 손에서 폰이 불을 뿜었습니다. 삼성은 리콜을 진행하고 교환폰을 보냈지만, 교환폰마저 폭발합니다.
결국 미국 교통부(DOT)와 연방항공청(FAA)은 모든 항공편에서 갤럭시 노트7의 반입을 금지합니다.2 비행기 탑승 전 “갤럭시 노트7을 소지하고 계신 분은 전원을 끄고 신고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삼성은 전량 리콜 후 단종을 결정합니다. 출시부터 단종까지 단 두 달. 피해액은 삼성 공식 추산 약 6조 원.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배터리를 더 얇은 본체에 넣기 위해 양극과 음극 사이의 간격을 극한까지 줄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일부 배터리에서는 제조 과정의 미세한 결함으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면서 단락(Short Circuit)이 발생했습니다. 단락이 일어나면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되면서 열이 폭주하고 — 발화합니다.
더 얇게, 더 가볍게, 더 많은 배터리 용량을. 스마트폰의 모든 부품이 밀리미터 단위로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의 이면입니다.
알쓸신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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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터치가 오작동하는 이유: 기내 기압이 낮아지면 공기가 건조해지고, 피부 표면의 수분이 줄어듭니다. 정전식 터치는 피부의 전기적 특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건조한 환경에서 감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 화면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오작동하는 것도 같은 원리의 반대 방향입니다 — 물도 도체이기 때문에 손가락이 아닌 곳에서 정전용량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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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유래: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4를 발표하면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반적인 시청 거리에서 사람의 망막(Retina)이 픽셀을 구분할 수 없는 밀도“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326PPI. 기술적 공식 용어가 아니라 마케팅 용어였지만,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경쟁에 불을 붙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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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터치스크린은 언제?: 정전식 터치스크린의 역사는 스마트폰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65년, 영국 왕립 레이더 연구소의 E.A. 존슨이 항공 관제 시스템을 위해 최초의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개발했습니다.3 휴대폰에 본격 도입된 것은 2007년입니다. LG 프라다가 최초의 정전식 터치 휴대폰이었고, 같은 해 아이폰이 멀티터치를 앞세워 대중화에 성공했습니다 —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42년이 걸린 셈입니다.
터치가 전기 신호가 되었고, 화면은 그 신호를 빛으로 바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호를 받아서 “배달앱을 실행하라“고 판단하는 건 누구일까요? 수십 개의 앱 중에서 정확히 하나를 골라 실행시키고, 화면에 메뉴를 띄우고, 터치할 때마다 반응하게 만드는 — 그 보이지 않는 관리자는 대체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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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젤(Bezel): 화면 주위의 테두리. 화면이 아닌 검은 가장자리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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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 Johnson, “Touch Display — A Novel Input/Output Device for Computers”, Electronics Letters, 1965. — Wikipedia: Touchscre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