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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WiFi, LTE/5G, 블루투스, 그리고 전자레인지”


이번 장에서 알게 될 것

  • WiFi가 잘 터지는 방과 안 터지는 방이 다른 이유
  •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WiFi가 느려지는 이유
  • 5G가 빠르다면서 왜 건물 안에서는 잘 안 잡히는지
  • 블루투스 이름이 왜 “파란 이빨“인지

치킨 주문 여정: 폰 밖으로

배달앱이 실행되었고, “치킨“을 검색했습니다. 이 검색 데이터는 이제 스마트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는 선이 꽂혀 있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나갈까요?


WiFi가 잘 터지는 방, 안 터지는 방

거실에서는 잘 되던 WiFi가 안방에 들어가면 느려지고, 화장실에서는 거의 끊깁니다. 공유기 바로 옆에서는 빠른데, 방 하나만 건너면 영상이 버퍼링에 걸립니다.

WiFi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전파입니다. 빛처럼 직진하고, 벽에 부딪히면 약해지고, 다른 전파와 섞이면 느려집니다.

이 장에서는 스마트폰이 데이터를 밖으로 보내는 방법 — 전파의 세계 — 를 다룹니다.


전파: 보이지 않는 빛

WiFi, LTE, 블루투스, FM 라디오, 심지어 전자레인지까지. 이것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전자기파입니다.

전자기파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보는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입니다.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X선, 전파 — 전부 같은 종류이고, 주파수만 다릅니다.

[그림 3-1] 전자기파 스펙트럼

전자기파 스펙트럼 (주파수 낮음 → 높음)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
  │           │        │         │        │
  라디오      리모컨     눈에 보임   일광     병원
  WiFi        히터                 차단     촬영
  LTE/5G
  블루투스
  전자레인지

  ← 파장 김 (벽 통과 잘 됨)              파장 짧음 (에너지 높음) →

핵심은 이겁니다 — 주파수가 높을수록 데이터를 많이 실어 보낼 수 있지만, 장애물에 약합니다.

FM 라디오가 산 뒤편에서도 들리는 건 주파수가 낮아서(88~108MHz) 파장이 길기 때문입니다. 파장이 길면 장애물을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주파수가 높으면 파장이 짧아져서 벽이나 건물에 흡수되거나 반사됩니다.

WiFi도 이 법칙을 따릅니다.


2.4GHz vs 5GHz: 왜 WiFi가 두 개인가

공유기 설정을 보면 WiFi가 두 개 — 가끔 세 개 —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공유기인데 이름 뒤에 “5G“가 붙어 있거나, 주파수가 다르다고 표시됩니다.

이건 같은 공유기가 두 가지 주파수 대역으로 동시에 신호를 쏘기 때문입니다.

[그림 3-2] WiFi 주파수 대역별 특성

┌─────────────────────────────────────────────┐
│                 공유기                        │
│                                             │
│   2.4GHz 📡────────────── 벽 ──── 📱 안방   │
│   (느리지만 멀리, 벽 통과 잘 됨)               │
│                                             │
│   5GHz   📡──── 📱 거실                      │
│   (빠르지만 가까이, 벽에 약함)                 │
└─────────────────────────────────────────────┘
2.4GHz5GHz
파장~12.5cm (긴 편)~6cm (짧은 편)
속도느림빠름
벽 통과잘 됨약함
채널 수3개 (혼잡)25개 (여유)
적합한 상황집 전체 커버같은 방에서 빠른 속도

거실에서 영상을 보려면 5GHz가 좋고, 안방까지 신호가 닿아야 한다면 2.4GHz가 낫습니다. 이 선택은 결국 물리 법칙의 트레이드오프입니다 — 속도를 얻으면 도달 거리를 잃고, 도달 거리를 얻으면 속도를 잃습니다.

집이 넓거나 층이 다르면 공유기 하나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메시 WiFi(Mesh WiFi) 입니다. 공유기 여러 대를 집 곳곳에 놓고, 서로 무선으로 연결해서 집 전체를 하나의 WiFi 네트워크로 덮는 방식입니다. 기기가 방을 이동하면 가장 가까운 공유기로 자동 전환됩니다.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WiFi가 느려진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전자레인지도 2.4GHz를 사용합니다.

전자레인지는 2.45GHz 전자기파로 음식 속 물 분자를 진동시켜 열을 냅니다. WiFi도 2.4GHz 대역을 사용합니다. 같은 주파수 대역이니까 — 간섭이 발생합니다.

[그림 3-3] 전자레인지와 WiFi 간섭

전자레인지 동작 중:

  WiFi 신호:    ████████████████████████
  전자레인지:      ████████████████       (같은 주파수에서 강한 노이즈)
  실제 수신:    ███    ████    ████      (중간중간 끊김)

  → 데이터 유실 → 재전송 → 체감 속도 저하

왜 굳이 같은 주파수를 쓰는 걸까요? 2.4GHz는 ISM 밴드(Industrial, Scientific, Medical) 라는 주파수 대역에 속합니다. 이 대역은 면허 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무료 주파수“입니다. 전자레인지도, WiFi도, 블루투스도 전부 이 무료 대역을 사용합니다. 무료니까 다 같이 쓰고, 다 같이 쓰니까 서로 간섭합니다.

해결법은 간단합니다. 5GHz WiFi를 쓰면 됩니다. 전자레인지와 주파수가 다르니까 간섭이 없습니다.

WiFi에도 세대가 있다

이동통신에 3G, 4G, 5G가 있듯이 WiFi에도 세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802.11n”, “802.11ac” 같은 복잡한 이름을 썼지만, 2018년부터 간단한 번호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WiFi 4 (2009~)  │ 802.11n    │ 2.4 + 5GHz  │ 최대 600Mbps
WiFi 5 (2014~)  │ 802.11ac   │ 5GHz만       │ 최대 3.5Gbps
WiFi 6 (2020~)  │ 802.11ax   │ 2.4 + 5GHz  │ 최대 9.6Gbps
WiFi 7 (2024~)  │ 802.11be   │ 2.4 + 5 + 6GHz  │ 최대 46Gbps

숫자만 보면 세대마다 몇 배씩 빨라지지만, 실제 체감 속도는 이론 수치와 다릅니다. WiFi 6의 핵심 개선점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여러 기기가 동시에 접속했을 때의 효율입니다. 가족 4명이 각자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을 쓰면서 TV로 스트리밍까지 할 때, 예전 WiFi는 차례를 기다려야 했지만 WiFi 6부터는 여러 기기에 동시에 데이터를 보낼 수 있습니다.


LTE와 5G: 이동통신의 세대

WiFi는 공유기 근처에서만 됩니다. 밖에 나가면 LTE나 5G로 바뀝니다. 이건 통신사 기지국1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G“는 Generation(세대)입니다. 1G부터 5G까지, 세대마다 속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이동통신 세대별 변화 (한국 기준)

  1G (1984~)  │ 아날로그 음성 통화만
  2G (1996~)  │ 디지털 전환, 문자 가능 (한국이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3G (2002~)  │ 모바일 인터넷 시작 (느린 웹서핑)
  4G/LTE (2011~) │ 영상 스트리밍 가능
  5G (2019~)  │ 초고속, 초저지연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

5G가 빠른 건 맞습니다. 이론상 LTE의 20배 속도입니다. 하지만 5G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Sub-6GHz vs 밀리미터파

5G는 두 가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합니다.

Sub-6GHz(6GHz 이하)는 기존 LTE와 비슷한 주파수 대역입니다. 속도는 LTE의 2~3배 정도. 벽도 잘 통과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5G는 대부분 이겁니다.

밀리미터파(mmWave)(28GHz~)는 진짜로 빠릅니다. 하지만 주파수가 극도로 높아서 벽은커녕 손바닥으로 가려도 신호가 끊길 수 있습니다. 건물 안에서는 거의 쓸 수 없고, 기지국에서 수백 미터 이내에서만 작동합니다.

[그림 3-4] 5G 밀리미터파의 건물 통과 한계

                  ┌──── 건물 ────┐
                  │              │
  기지국 📡 ─── mmWave ───╳     │    ← 벽을 통과 못함
                  │              │
  기지국 📡 ─── Sub-6 ──────────── 📱  ← 통과
                  │              │
                  └──────────────┘

“5G인데 왜 체감이 안 나지?”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경에서는 Sub-6GHz를 쓰고 있기 때문에, LTE보다 약간 빠른 정도에 그치는 것입니다. 밀리미터파의 진짜 속도를 체감하려면 기지국이 보이는 야외에 있어야 합니다.

5G의 진짜 가치는 단순한 속도보다 초저지연에 있습니다. LTE의 지연 시간이 약 30~50ms라면, 5G는 1~10ms까지 낮아집니다. 사람이 느끼기엔 둘 다 빠르지만, 자율주행차나 원격 수술처럼 밀리초 단위의 반응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블루투스: 파란 이빨의 왕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키보드. 이런 기기를 폰과 연결하는 건 WiFi가 아니라 블루투스(Bluetooth) 입니다.

블루투스도 2.4GHz 대역을 사용하지만, WiFi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블루투스는 2.4GHz 안에서 79개 채널을 1초에 수백 번 바꿔가며 데이터를 보냅니다. 이걸 주파수 호핑(Frequency Hopping) 이라고 합니다. 한 채널에서 간섭이 생겨도 바로 다른 채널로 뛰어넘으니까, 안정적으로 연결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속도는 WiFi보다 훨씬 느립니다. 대신 전력 소모가 적어서 배터리로 동작하는 작은 기기에 적합합니다. 무선 이어폰이 하루 종일 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기술의 이름이 왜 “파란 이빨“일까요?

10세기 덴마크 왕 하랄드 블로탄(Harald Bluetooth) 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왕은 분열된 덴마크를 통일하고 노르웨이까지 지배한 인물입니다.2 블루투스 기술도 서로 다른 기기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블루투스 로고도 하랄드의 이니셜 H와 B를 룬 문자로 합친 것입니다.


사건: 2024 CrowdStrike — 보안 업데이트 하나가 세계를 멈추다

2024년 7월 19일, 전 세계가 동시에 멈추었습니다.

미국 항공편 수천 편이 결항되었고, 영국 병원의 예약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호주 슈퍼마켓의 결제 시스템이 멈추었습니다. 원인은 해킹이 아니었습니다.

보안 회사 CrowdStrike가 배포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파일 하나에 오류가 있었습니다.3

CrowdStrike의 보안 프로그램 “Falcon Sensor“는 전 세계 수백만 대의 윈도우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운영체제의 가장 깊은 곳 — 커널(Kernel) 수준 — 에서 동작합니다. 2장에서 운영체제가 “하드웨어와 앱 사이의 통역“이라고 했는데, 커널은 그 통역의 핵심부입니다.

이 핵심부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이 잘못된 업데이트를 받았으니, 운영체제 자체가 부팅되지 못합니다. 결과는 파란 화면 — 2장에서 알쓸신잡으로 언급한 바로 그 블루스크린(BSOD)이었습니다.

피해 규모는 약 850만 대의 윈도우 컴퓨터. 전체 윈도우 기기의 1%도 안 되는 수치지만, 항공, 의료, 금융 등 핵심 인프라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문제는 자동으로 고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컴퓨터가 켜지지 않으니 원격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IT 담당자가 한 대 한 대 직접 안전 모드로 부팅해서 문제 파일을 삭제해야 했습니다. 850만 대를.

하나의 잘못된 업데이트가 항공, 의료, 금융, 방송, 유통을 동시에 마비시켰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소프트웨어 위에 얼마나 빈틈없이 올라가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알쓸신잡

  • 비행기 모드는 정말 필요한가?: 비행기 모드의 원래 목적은 스마트폰 전파가 항공 장비에 간섭을 일으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현대 항공기에 영향을 주는지는 확실히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승객이 동시에 기지국을 찾는 신호를 보내면 지상 통신망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만에 하나라도 위험 가능성이 있으니 규정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기내 WiFi가 제공되는 항공편이 많아서, 비행기 모드를 켠 채로 WiFi만 따로 켜는 경우가 흔합니다.

  • LAN 케이블이 꼬여 있는 이유: 이더넷 케이블(LAN선)을 잘라보면 내부에 꼬인 선 4쌍(8가닥)이 들어 있습니다. 전류가 흐르는 선 주위에는 전자기장이 생기는데, 두 선이 나란히 놓여 있으면 서로 간섭합니다(크로스토크). 선을 꼬면 전자기장이 반 바퀴마다 방향이 뒤집혀서 간섭이 상쇄됩니다. 이 기술을 발명한 사람은 전화기의 발명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입니다. 1881년 특허(US 244,426).4 전화선 간섭을 줄이기 위해 만든 것이 140년 뒤에도 인터넷 케이블에 쓰이고 있습니다.

  • WiFi 이름에 재밌는 이름 짓기: 공유기의 WiFi 이름(SSID)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FBI Surveillance Van”(FBI 감시 차량), “Pretty Fly for a Wi-Fi”, “It Hurts When IP” 같은 이름이 유명합니다. 한국에서는 “비밀번호는1234”, “옆집것쓰지마세요” 같은 이름이 돌아다닙니다.

이제 데이터가 전파를 타고 스마트폰을 빠져나왔습니다. 공유기를 지나 통신사 네트워크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가 태평양 건너 미국 서버까지 닿으려면, 대체 어떤 길을 따라가는 걸까요?



  1. 기지국: 스마트폰과 통신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안테나 장비. 건물 옥상이나 철탑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 하랄드 블로탄(Harald Bluetooth, c.958~c.986). — Bluetooth.com 공식 유래

  3. 2024년 7월 19일. 약 850만 대의 윈도우 기기가 영향을 받았다. — CrowdStrike 사고 보고서

  4. Alexander Graham Bell, US Patent 244,426 (1881). — Google Pa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