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board shortcuts

Press or to navigate between chapters

Press S or / to search in the book

Press ? to show this help

Press Esc to hide this help

5장. 주소를 찾아서

“DNS, IP, 라우팅 — 인터넷의 내비게이션”


이번 장에서 알게 될 것

  •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기기가 갖고 있는 “주소“의 정체
  • 43억 개의 주소가 바닥나도 인터넷이 작동하는 이유
  • “google.com“을 치면 벌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문 릴레이
  • 전 세계 인터넷을 6시간 동안 멈춘 설정 실수 하나

치킨 주문 여정: 주소를 찾아라

데이터가 해저케이블을 타고 이동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전 세계에 서버가 수억 대이고, 웹사이트가 수십억 개입니다. “배달의민족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스마트폰은 어떻게 알까요?


인터넷에도 주소가 있다

택배를 보내려면 주소가 필요합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기기 —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 심지어 스마트 냉장고까지 — 에는 고유한 주소가 할당됩니다. 이 주소를 IP 주소(Internet Protocol Address) 라고 합니다.

IP 주소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림 5-1] IPv4 주소의 구조

  192.168.0.1

  0~255 . 0~255 . 0~255 . 0~255
  ──┬──   ──┬──   ──┬──   ──┬──
  8비트    8비트    8비트    8비트   = 총 32비트

네 개의 숫자를 점으로 구분한 형태입니다. 각 숫자는 0부터 255까지의 범위를 가지고, 전체는 32비트로 구성됩니다. 이 방식을 IPv4(Internet Protocol version 4) 라고 합니다.

32비트로 만들 수 있는 주소의 개수는 2^32 = 4,294,967,296. 약 43억 개입니다.

43억이면 충분해 보입니다. 1980년대에 이 체계를 설계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 명이고,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는 150억 대를 넘습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워치, 스마트 TV, 공유기, IoT 센서… 한 사람이 여러 대의 기기를 사용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IPv4 주소는 2011년에 공식적으로 고갈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2025년에도 인터넷을 잘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파트 호수의 비밀: NAT

답은 NAT(Network Address Translation, 네트워크 주소 변환) 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는 인터넷에서 보이는 공식 주소가 하나 있습니다. 공인 IP라고 합니다. 그리고 집 안의 기기들 — PC,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 TV — 은 각각 별도의 내부 주소를 갖습니다. 사설 IP라고 합니다.

[그림 5-2] NAT와 공인 IP/사설 IP

  인터넷에서 보이는 주소 (공인 IP): 203.249.55.10  ← 1개
      │
      │  [공유기 = 아파트 관리실]
      │
      ├── PC:        192.168.0.2    ← 사설 IP
      ├── 스마트폰:   192.168.0.3    ← 사설 IP
      ├── 태블릿:     192.168.0.4    ← 사설 IP
      └── 스마트 TV:  192.168.0.5    ← 사설 IP

아파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택배 기사에게 필요한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XX아파트“입니다. 이것이 공인 IP입니다. 아파트 안에서 각 세대를 구분하는 “101호, 102호, 201호“는 사설 IP에 해당합니다.

공유기가 아파트 관리실 역할을 합니다. 밖에서 택배(데이터)가 오면, 공유기는 “이건 102호(스마트폰)가 요청한 거니까 102호로 전달“하고 판단합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택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유기가 발신 주소를 공인 IP로 바꿔서 내보냅니다.

이 덕분에 공인 IP 하나로 집 안의 기기 수십 대가 동시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43억 개의 IPv4 주소로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192.168.x.x, 10.x.x.x, 172.16.x.x로 시작하는 주소를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설 IP입니다. 인터넷 밖으로는 나갈 수 없고, 여러분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WiFi 설정에서 IP 주소가 192.168.0.x로 시작하는 것을 본 적 있을 겁니다. 그건 여러분의 공유기가 할당한 사설 IP입니다. 옆집도 192.168.0.x를 쓸 수 있습니다. 아파트 “101호“가 어느 아파트에나 있는 것처럼, 사설 IP는 각 네트워크 안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IPv6: 우주의 모래알에도 주소를

NAT는 응급 처치였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IPv6(Internet Protocol version 6) 입니다.

[그림 5-3] IPv4와 IPv6 비교

  IPv4:  192.168.0.1                                      (32비트)
  IPv6:  2001:0db8:85a3:0000:0000:8a2e:0370:7334          (128비트)

128비트로 만들 수 있는 주소의 수는 2^128 ≈ 3.4 × 10^38개입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보겠습니다.

  • 지구 위의 모래알 하나하나에 수만 조 개씩 주소를 부여해도 남습니다
  • 관측 가능한 우주의 모든 별에 각각 수백 조 개의 주소를 줄 수 있습니다
  • 사실상 무한입니다

그런데 IPv6가 2011년부터 권장되었는데, 2025년 현재 전 세계 보급률은 약 40% 정도입니다. 14년이 지났는데 절반도 안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돌아가는 걸 왜 바꿔?”

NAT로 충분히 버티고 있고, IPv4와 IPv6는 서로 호환되지 않아서 두 체계를 동시에 운영해야 합니다. 라우터, 방화벽, 소프트웨어를 전부 업데이트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전환이 이렇게 느린 것입니다.

기술의 세계에서도 “작동하는 코드를 건드리지 마라“는 원칙은 강력합니다.


DNS: 인터넷의 전화번호부

IP 주소 이야기를 했으니, 한 가지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142.250.196.110

이 숫자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google.com 의 IP 주소입니다.

우리가 인터넷을 쓸 때 IP 주소를 직접 입력하는 일은 없습니다. “google.com”, “naver.com”, “baemin.com“처럼 이름을 입력합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름을 모릅니다. 오직 숫자(IP 주소)만 이해합니다.

누군가가 이름을 숫자로 변환해 줘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DNS(Domain Name System) 입니다. 말 그대로 인터넷의 전화번호부입니다. “김철수“라는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찾으면 전화번호가 나오듯, “google.com“을 DNS에 물어보면 142.250.196.110이라는 IP 주소가 나옵니다.

[그림 5-4] DNS 질의 흐름

  "google.com이 어디야?"         "142.250.196.110이야"
          │                              ↑
          ↓                              │
      ┌──────┐      질문      ┌────────────┐
      │ 브라우저 │ ──────────→ │   DNS 서버    │
      └──────┘   ←────────── └────────────┘
                    응답

간단해 보이지만, 전 세계에는 도메인이 수십억 개 있습니다. 이걸 서버 하나가 다 알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질문 릴레이: DNS의 계층 구조

DNS는 하나의 거대한 전화번호부가 아니라, 계층적으로 분산된 시스템입니다. “모르면 위에 물어보고, 위에서도 모르면 더 위에 물어보는” 구조입니다.

여러분이 브라우저에 “baemin.com“을 입력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림 5-5] DNS의 계층 구조

  ① 브라우저 캐시
     "이 도메인 최근에 검색한 적 있나?"
     → 있으면 바로 사용. 끝.
          ↓ (없으면)
  ② OS 캐시
     운영체제가 기억하고 있는 DNS 기록 확인
          ↓ (없으면)
  ③ 공유기 DNS 캐시
     공유기도 최근 질문 결과를 저장해 둠
          ↓ (없으면)
  ④ ISP의 재귀 DNS 서버 (Recursive Resolver)
     통신사(KT, SKT 등)가 운영하는 DNS 서버에 질문
          ↓ (여기서도 모르면)
  ⑤ 루트 네임서버
     "나는 모르지만, .com은 저쪽에 물어봐"
          ↓
  ⑥ .com TLD[^1] 네임서버
     ".com은 아는데, baemin.com은 저쪽에 물어봐"
          ↓
  ⑦ baemin.com 권한 네임서버
     "baemin.com의 IP는 xxx.xxx.xxx.xxx야!"
          ↓
  ⑧ 응답이 역순으로 전달되며, 각 단계에서 캐시됨

한 번 검색한 도메인은 각 단계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기억해 둡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접속부터는 ①번에서 바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DNS가 느리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 전체 과정이 보통 수십 밀리초 안에 끝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루트 서버: 인터넷의 출발점 13개

DNS 계층의 맨 꼭대기에는 루트 네임서버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 이름이 딱 13개입니다. A부터 M까지.

  A — Verisign          (미국)
  B — USC-ISI           (미국)
  C — Cogent            (미국)
  D — Univ. of Maryland (미국)
  ...
  K — RIPE NCC          (네덜란드)
  L — ICANN             (미국)
  M — WIDE              (일본)

왜 13개뿐일까요? 기술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DNS가 처음 설계될 때 응답 패킷의 크기가 512바이트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 안에 넣을 수 있는 서버 정보가 최대 13개였습니다. 그래서 13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13개“는 이름이 13개라는 뜻이지, 물리적 서버가 13대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서버는 전 세계에 수백 대 분산되어 있습니다. 애니캐스트(Anycast) 라는 기술을 사용해서, 같은 IP 주소를 여러 위치에 배치합니다. 질문을 보내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서버가 자동으로 응답합니다.

서울에서 루트 서버에 질문하면 미국까지 가는 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루트 서버 미러가 응답하는 겁니다.


라우터: 갈림길의 이정표

DNS가 목적지의 IP 주소를 알려줬습니다. 이제 데이터를 그 주소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하나의 직선 도로가 아닙니다. 수십억 개의 기기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데이터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려면, 중간중간 갈림길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안내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이 안내 역할을 하는 장비가 라우터(Router) 입니다.

[그림 5-6] 라우터의 동작 원리

                     인터넷
                       ↑
            ┌──────────┴──────────┐
            │     라우터 (ISP)      │
            │  "이 패킷은 어디로?"    │
            └──────────┬──────────┘
                 ┌─────┴─────┐
           ┌────┴────┐  ┌───┴─────┐
           │ 서울 방향  │  │ 부산 방향  │
           │(다음 라우터)│  │(다음 라우터)│
           └─────────┘  └─────────┘

라우터는 라우팅 테이블이라는 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목적지로 가는 데이터는 이쪽 방향으로 보내라“는 안내표입니다.

  라우팅 테이블 (단순화):
  ┌──────────────────┬────────────────┐
  │ 목적지             │ 다음 라우터       │
  ├──────────────────┼────────────────┤
  │ 10.0.0.0/8       │ 직접 연결         │
  │ 172.16.0.0/16    │ 192.168.1.1    │
  │ 기본 (그 외 전부)   │ 203.0.113.1    │
  └──────────────────┴────────────────┘

여기서 핵심이 있습니다. 라우터는 최종 목적지까지의 전체 경로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다음 라우터가 누구인지“만 압니다. 마치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을 넘기듯, 한 라우터가 다음 라우터에게 데이터를 넘기고, 그 라우터가 또 다음 라우터에게 넘기고… 이렇게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서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내비게이션처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전체 경로를 미리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매 갈림길에서 “다음엔 저쪽“이라는 판단만 내리는 방식입니다.

traceroute: 데이터의 여행 경로를 눈으로 보기

이 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컴퓨터의 명령 프롬프트(터미널)를 열고 이렇게 입력해 보세요.

  > tracert google.com     (Windows)
  $ traceroute google.com  (Mac/Linux)

  출력 예시:
  1   <1 ms    192.168.0.1         ← 내 공유기
  2    3 ms    10.xxx.xxx.1        ← ISP 첫 번째 라우터
  3    5 ms    112.xxx.xxx.xxx     ← ISP 백본 라우터 (서울)
  4    7 ms    112.xxx.xxx.xxx     ← ISP 백본 라우터
  5   10 ms    72.xxx.xxx.xxx      ← 인터넷 교환점(IX)
  6   32 ms    108.xxx.xxx.xxx     ← 태평양 횡단 지점
  7   33 ms    142.xxx.xxx.xxx     ← 구글 엣지 라우터
  8   34 ms    142.250.196.110     ← 구글 서버 도착

여러분의 데이터가 8개의 라우터를 거쳐 구글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약 34밀리초. 빛의 속도가 이 정도입니다.

5번과 6번 사이에서 응답 시간이 10ms에서 32ms로 훌쩍 뛰는 구간이 보입니다. 이 구간이 바로 태평양 해저케이블을 지나는 지점입니다. 4장에서 이야기한 그 케이블 말입니다. 물리적 거리가 시간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중간에 * * *로 표시되는 구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해당 라우터가 보안상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것입니다. 길은 있지만 이정표를 가린 것과 같습니다.


BGP: 인터넷 전체의 내비게이션

라우터가 갈림길의 이정표라면, 한 단계 위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인터넷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아닙니다. KT, SKT, LG U+,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이 개별 네트워크를 AS(Autonomous System, 자율 시스템) 라고 합니다.

[그림 5-7] AS와 BGP 구조

  AS1 (KT)          AS2 (SK브로드밴드)       AS3 (구글)
  ┌──────────┐     ┌──────────────┐      ┌──────────┐
  │  라우터들   │─────│   라우터들      │──────│  라우터들   │
  │  (한국)    │     │   (한국)       │      │  (전세계)  │
  └──────────┘     └──────────────┘      └──────────┘
       │                                       │
  AS4 (LG U+)                           AS5 (아마존 AWS)
  ┌──────────┐                          ┌──────────┐
  │  라우터들   │──────────────────────────│  라우터들   │
  │  (한국)    │                          │  (전세계)  │
  └──────────┘                          └──────────┘

이 AS들 사이에서 “내 쪽으로 오면 어디어디에 갈 수 있어“라는 경로 정보를 교환하는 프로토콜이 BGP(Border Gateway Protocol) 입니다.

BGP는 인터넷 전체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입니다. 개별 라우터의 라우팅 테이블이 동네 길 안내판이라면, BGP는 도시 간, 국가 간 고속도로 표지판입니다.

BGP가 중요한 이유는 이겁니다. 인터넷에서 “구글 서버까지 어떻게 갈까?“를 결정하는 것이 결국 BGP입니다. KT 망에서 시작한 데이터가 어느 경로를 따라 구글의 AS에 도달할지, 그 판단을 BGP가 내립니다.

BGP에서는 이렇게 경로 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것을 “광고(advertise)” 라고 합니다. 마케팅 광고가 아닙니다. “이 IP 주소로 가려면 내 쪽으로 보내“라고 이웃 네트워크에 알려주는 것입니다. 각 AS는 자기가 도달할 수 있는 IP 범위를 BGP로 광고하고, 이 광고가 인터넷 전체로 퍼지면서 경로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BGP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사건 1: Facebook이 인터넷에서 사라진 날 (2021)

2021년 10월 4일, 페이스북 엔지니어가 백본1 라우터 설정을 변경하던 중 실수를 저지릅니다. 자사의 BGP 경로를 전부 철회한 것입니다.2

  정상 상태:
  인터넷: "facebook.com은 AS32934(페이스북)에 있어"
  → 경로를 따라 도달 가능

  사고 후:
  인터넷: "facebook.com? 그런 곳 모르는데?"
  → 페이스북이 인터넷 지도에서 사라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이 동시에 다운되었습니다. 6시간 동안.

DNS도 함께 죽었습니다. BGP 경로가 사라졌으니 페이스북의 DNS 서버에도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facebook.com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떤 숫자로도 변환되지 않는 상태가 된 겁니다.

원격 복구가 불가능했습니다. 복구를 위해 접속해야 하는 시스템이 페이스북 네트워크 안에 있었으니까요. 엔지니어들이 물리적으로 데이터센터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 문을 여는 전자 배지 시스템도 페이스북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문이 안 열린 겁니다.

결국 물리적으로 자물쇠를 깨고 들어갔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의 개인 자산은 이날 하루에 약 7조 원 감소했습니다. 주가 폭락 때문이었습니다.

설정 변경 하나가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를 6시간 동안 지구상에서 증발시켰습니다.


사건 2: 한 나라의 실수가 전 세계 유튜브를 멈추다 (2008)

2008년 2월, 파키스탄 정부가 자국 내에서 유튜브를 차단하기로 결정합니다. 파키스탄 텔레콤은 BGP를 이용해 “유튜브 IP 범위는 내 쪽으로 보내“라고 광고했습니다. 자국 내에서만. 받은 데이터는 버렸습니다. 블랙홀 라우팅이라고 불리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 BGP 광고가 자국 밖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파키스탄이 의도한 것:
  파키스탄 내부 → "유튜브? 이쪽이야" → 블랙홀 (차단)

  실제로 벌어진 일:
  전 세계 → "유튜브? 파키스탄 쪽이 더 가깝대!" → 파키스탄 → 블랙홀
  → 전 세계 유튜브 약 2시간 먹통

전 세계의 유튜브 트래픽이 파키스탄으로 빨려 들어가서 사라졌습니다.3

이 사건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BGP는 원래 “이 광고가 진짜인가?“를 검증하는 메커니즘이 없었습니다. 1989년에 설계되었을 때, 인터넷에 연결된 네트워크가 몇 천 개에 불과했고, 모두 대학과 연구기관이었습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으니 검증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이 신뢰 기반 시스템은 취약점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RPKI(Resource Public Key Infrastructure) 같은 보안 확장이 도입되고 있지만, 아직 모든 AS가 적용한 것은 아닙니다.


사건 3: Dyn DDoS — 전화번호부가 죽으면 (2016)

2016년 10월 21일, DNS 서비스 업체 Dyn이 대규모 공격을 받았습니다.4

공격 도구는 미라이(Mirai) 봇넷5이었습니다. 웹캠, 공유기, DVR 같은 IoT 기기 수십만 대가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하나의 공격 네트워크로 묶여 있었습니다. 이 기기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출하 시 설정된 기본 비밀번호(admin/admin, 1234 등)를 바꾸지 않은 것입니다.

감염된 수십만 대의 기기가 동시에 Dyn의 DNS 서버에 쓰레기 요청을 쏟아부었습니다. DDoS(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입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트위터, 넷플릭스, 레딧, 깃허브, CNN, 스포티파이… 미국 동부의 주요 웹사이트가 일제히 접속 불가 상태에 빠졌습니다.

인터넷 자체는 살아있었습니다. IP 주소를 직접 입력하면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번호부(DNS)가 죽었으니, 이름으로 접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이 죽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웹캠이나 공유기의 비밀번호를 바꾼 적이 없다면,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8.8.8.8 — “인터넷이 안 될 때“의 비밀번호

“인터넷이 안 되면 DNS를 8.8.8.8로 바꿔봐.”

IT 관련 커뮤니티에서 흔히 보이는 조언입니다. 8.8.8.8은 구글이 운영하는 공개 DNS 서버의 주소입니다.

  구글 DNS:       8.8.8.8  (주)  /  8.8.4.4  (보조)
  Cloudflare DNS: 1.1.1.1  (주)  /  1.0.0.1  (보조)

통신사(ISP)의 DNS 서버가 느리거나 불안정할 때, 이 공개 DNS로 바꾸면 나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글의 DNS는 전 세계에 분산된 강력한 인프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Cloudflare의 1.1.1.1은 더 흥미로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 IP는 원래 APNIC(아시아태평양 IP 관리 기관) 소유였는데, 워낙 많은 사람이 테스트용 더미 IP로 1.1.1.1을 마구 입력하다 보니 정상적으로 활용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Cloudflare가 APNIC과 파트너십을 맺어 DNS 서비스로 운영하고, APNIC은 그 트래픽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알쓸신잡

  • 최초의 인터넷 메시지는 “LO”: 1969년 10월 29일, UCLA에서 스탠포드로 세계 최초의 인터넷(ARPANET) 메시지를 보내려 했습니다. 전송하려던 단어는 “LOGIN“이었습니다. L을 보내고, O를 보내고… 시스템이 다운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류 최초의 인터넷 메시지는 “LO” 가 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Lo and behold(보라!)“라는 영어 감탄사가 된 셈입니다.

  • “인터넷에 192.168.1.1을 치면?”: 브라우저에 192.168.1.1을 입력하면 남의 집이 아니라 내 공유기 설정 페이지가 열립니다. 사설 IP는 인터넷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 네트워크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공유기 제조사마다 기본 관리 페이지 주소가 다른데, 192.168.0.1이나 192.168.1.1이 가장 흔합니다. 여기서 WiFi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연결된 기기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치킨 주문 데이터는 DNS로 배달의민족 서버의 주소를 찾았고, 라우터들의 릴레이를 통해 그 서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될까요? 중간에 데이터가 사라지면? 순서가 뒤바뀌면? 인터넷에는 데이터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과, 빠르지만 좀 대충 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1. 백본(Backbone): 인터넷의 고속 중심 회선. 도로로 치면 고속도로에 해당한다.

  2. 2021년 10월 4일, 약 6시간 동안 지속. — Engineering at Meta

  3. 2008년 2월 24일, 약 2시간 동안 전 세계 유튜브 장애 발생. — RIPE NCC 분석

  4. 미라이 봇넷을 이용한 DDoS 공격. IoT 기기 수십만 대가 동원됨. — Wikipedia

  5. 봇넷(botnet): 악성코드에 감염된 수많은 컴퓨터나 기기를 원격 조종하여 하나의 공격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시스템. “로봇 네트워크(robot network)“의 줄임말.